Rockefeller Centre

Crown Building 


5th Avenue
를 Plaza 호텔 광장(59th Street) 에서 부터 내려오다 보면57th Street 오른쪽에 Crown Building이 있는데, 이 건물이 1921년 구역에 지어진 최초의 높은 빌딩이었으며, 1916제정된 건축 규제에 따른  사무실 빌딩이다
1929년에는  빌딩12층에서 초라하게 전시회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현대미술박물관 MOMA로 발전하게 된다.



Trump Tower 

56과 57th Street에는 지난 미국 대통령 Donald Trump 집이 있는 빌딩이 있다



Harry Winston
5th Avenue / 54 Street 에는 보석상 Harry Winston이 있다.

Harry Winston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가 44.5 캐럿의 Hope 다이아몬드를 박물관에 기증할 그걸 그냥 등기우편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보내면서 "만일 우리가 미국 우편을 믿을  없다면 누구를 믿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이 Harry Winston 이라는 이름은 워싱턴 DC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2층 보석 전시실에서 찾을 수 있다.




Rockefeller Centre


John Davison Rockefeller Jr. (1839-1937)

록펠러 센터는 록펠러가 지은 총 19개의 건물을 말한다. 
그는 일단 현재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부자였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가 부유하게 됐던 것은 그가 살던 당시 미국 원유 정제의 90%를 혼자 처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식의 독점이 가능했나? 이는 당시 법에 독점을 규제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그의 치킨게임 같은 사업확장 방식 때문이다. 즉 그는 누군가 자신과 같은 업종에 진출하면 일단 가격을 떨구어서 망하게 하고 그걸 인수해서 자신의 크기를 키웠다. 이렇게 하다보니 결국 그 혼자 90%를 독점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 정부에서 독과점 금지법을 제정하여 1911년에 강제로 록펠러의 정유회사를 34개로 분할해 버린다. 

록펠러의 총재산은 1913년에 3300억불에 달한다. 이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2015년 한 해 예산인 357조 4000억원에 비교되는 금액이다. 

** 2019년 7월 현재 세계 부자 순위 (2019년 7월 19일 USA TODAY)
1 Jeff Bezos, US, $124 billion
2 Bernard Arnault, France, $108 billion
3 Bill Gates, US, $107 billion
4 Warren Buffett, US, $81.9 billion
5 Mark Zuckerberg, US, $78.7 billion 
** 이건희 $16.9 billion 


- 1870년 Stnadard Oil 창업
- 1897년 퇴진 
2선으로 후퇴한 이후 의약 및 과학에 투자하여 십이지장충, 황열병 등을 퇴치하는데 적극 참가하였으며,  시카고대학, 록펠러대학 그리고 필리핀대학을 설립하는 등 교육에 적극 투자하였다. 이런 행동은 일종의 기부 혹은 부의 환원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런 덕분에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술 담배 등을 전혀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침례교인이었으며 자본주의자 사회적 다윈주의자 였다. 

현재의 록펠러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는 아래와 같다. 
- 1928년 Metropolitan Opera단이 록펠러에게 함께 극장을 짓는 것이 어떤가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위치는 현재 록펠러 센터가 위치한 곳이었으며 당시 이 땅의 소유주는 콜럼비아 대학이었다. 록펠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대학으로부터 땅을 빌려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1929년 불황이 시작되면서 오페라단의 태도가 변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록펠러는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혼자 마무리 지을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혼자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1930년 5월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한다. 
- 원래 자리에 있던 228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부수었으며 이로 인해 4,000명이 집을 비워야 했고 총 75,000명이 일을 하였으며 그 결과 14개의 아르데꼬Art Deco 양식 빌딩을 짓거나 증축하고 정리하였다. 총 예산은 2억5천만불이었다. 
- 이 공사는 뉴욕 시에서 행해졌던 역사상 가장 큰 개인 공사 현장이었다. (참고로, 개인이 아니라 관에 의해 행해진 가장 큰 공사는 1947년 Stuyvesant Town 이라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아파트 건설이다.)

- 대표 건축가 Raymond Hood
- 1930.5.17 시작, 1939년 오픈 
- 1989년에는 일본 기업 미쯔비시가 인수하였고
- 1996년에 골드만싹스를 중심으로 하는 컨소시엄에서 다시 인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세계 2차대전 중에는 영국의 정보기관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었고 이는 나중에 CIA가 되는 정보기관 사무실이었다. 
옥상에는 Top of the Rock 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전망대는 무역센터 빌딩에 있는 전망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와 더불어 뉴욕의 중요한 전망대 중 하나이다. 



St. Patrick’s Cathedral 

이 성당은 현재 뉴욕의 성당 중 가장 중요한 성당이라 할 수 있으며 대주교가 머무는 성당이다. 

- 1810년대 이 자리에는 학교도 있었고 수도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고아원도 있었다. 
- 1828년 당시 뉴욕의 주요 성당이었던 두 성당 St. Peter's 와 St. Patrick's가 이곳을 묘지로 이용하기 위해 땅을 산다. 그러나 당시에 여기는 너무 멀었고 또 바위 투성이었다. (뉴욕은 남쪽부터 발달해 북쪽으로 발전했으며 1800년대에는 소호 주변이 뉴욕 중심지였다.) 
- 1850년 John Hughes 대주교가 이곳에 성당을 건설할 계획을 밝히고 1858년까지 돈을 모아 공사를 시작한다.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인해 공사가 일시 중단된 적도 있으나 전 후 다시 계속되어 1878년 완공되었다.

공사 기한이 전쟁을 포함해 4배가 더 걸리게 되면서 원래 예산보다 두 배가 더 들었다.

- 건축가 James Renwick Jr. 가 Gothic Revival Style로 건설


- 1920년 위대한 개츠비를 쓴 피체랄드 F. Scott Fitzgerald가 이곳에서 결혼했고
- 1968년 Robert F. Kennedy 장례식이 있었으며
- 1987년 앤디 워홀 Andy Warhol이 예배를 보았다
- 911에서 죽은 경찰관 소방관 들의 장례도 이곳에서 있었다


- 미국 카톨릭 6950만 (2015, 전 국민의 22%)
- 첫 카톨릭은 1493년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에 함께 온 스페인 선교단
- 미국에는 현재 5명의 추기경이 있는데 두 사람은 시카고와 보스톤에, 나머지 세 사람은 교구가 없다.